예전에 하던 일이 있다 보니 아직도 기업이나 기관 홍보부서에서 웹사이트 구성이나 구축 계획에 대한 분석 내지는 감수 의뢰가 온다. 이럴 때 피드백은 1, 2페이지짜리 간단한 리포트를 만들어서 보내기도 하고, 가끔은 미팅에 참석해서 직접 의견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번씩은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연락이 온다.
이런 통화의 특징은 우선 소속과 이름만 밝히고 다짜고짜 자신의 급한 사정부터 정신 없이 이야기한다는 것, 둘째 자신이 맞닥뜨린 상황의 문제점이나 심각성에 대한 파악이 덜 되어 있다는 것, 셋째 대부분 기한이 아주 촉박하거나 이미 넘겼다는 것, 마지막으로 일이 잘 못될 경우에 대한 대비책도 거의 없다는 것 등등이다.
얼마 전에도 한다리 걸쳐서 그런 전화를 받았다. 규모가 꽤 된다는 공공기관의 홍보팀 담당자였는데, 자기 동료가 예전에 나에게 인터넷 마케팅 강의를 들었단다. 아무튼 그 친구가 설명한 현 상황은 대강 이랬다.
3년 전 회사 사이트를 거창하게 만들었다. 전산팀장까지 포함해서 프로젝트팀이 꾸려지고 입찰과 2차례의 공개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업체를 선정했다. 억 단위로 돈이 들어갔지만, 디자인도 잘 빠지고 주변의 평가도 좋았다.
* 사이트를 처음 구축했을 때는 다들 디자인도 잘 빠졌고 근사하다고 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스템이나 업무 프로세스의 측면도 누군가는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경영진이 바뀌자 변동사항이 많아지고, 디자인 트렌드도 많이 바뀌어서 윗선에서 수정을 지시했다. 가용 예산은 1000만원 정도. 그런데 사이트를 구축했던 회사에 물어보니 거의 새로 구축하는 정도의 비용을 요구했다. 윗선에 보고했더니 그냥 적당한 회사 하나 찾아서 나중에 재구축할 때 일 줄 테니 이번에는 그냥 수정만 해달라고 하란다.
수소문 끝에 작은 업체 한군데와 이야기가 대강 되었는데, 실무 미팅에서 프로그램 팀장이 못하겠단다. 시스템이 범용성이 없어서 자기네 능력으로는 할 수가 없다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윗선에서는 리뉴얼 완료 시점을 기관 설립일에 맞추라는데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큰일이다.
알고 보니 사정이 딱했다. 그 기관 사이트는 닷넷 1.1로 구축되어 있었던 것. 헐값에 땜빵 리뉴얼 하기로 했던 회사의 프로그램 팀장이 시스템을 열어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라고. 자기네 회사에는 닷넷하는 친구가 없단다.
자, 사이트를 구축할 당시 홍보담당 이사부터 팀장, 담당자까지 지금은 아무도 없다. 항상 그렇듯이 전산실은 그저 옆에서 자문만 할 뿐 절대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관 자문교수들로 구성했던 외부 심사위원단에는 시스템 전문가가 없었다.
* 홍보의 무게중심이 인터넷으로 급속하게 이동하면서 홍보담당자들이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든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점차 더 늘어날 것이다.
죽은 자식 부랄 만지기지만 도대체 왜 굳이 전산실에서도 채택하지 않았던 닷넷으로 사이트를 구축했을까? 여러 이유와 사정이 있었겠지만 담당자가 IT를 조금만 알았더라면, 아니면 IT전문가에게 자문이라도 제대로 받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결국 닷넷이 가능한 소규모 업체를 한군데 소개해주는 걸로 끝냈지만 뒷맛은 여전히 개운치 않다.
그 담당자는 IT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윗선에 어떻게 보고를 하고 납득시킬까? 그리고 무엇보다 홍보실 직원들은 도대체 왜 IT를 공부하지 않는 걸까? 홍보 환경이 급격하게 IT위주로 바뀌고 있는데도 홍보담당자들의 IT 마인드는 10년 전이나 별로 바뀐 것 같지가 않다.
'IT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바타 호들갑, 1993년 쥬라기공원 때와 똑같다 (3) | 2010/01/20 |
|---|---|
| 대한민국 블로그의 봄날은 갔는가 (7) | 2010/01/11 |
| 10년전 Y2K 대소동을 기억하십니까? (3) | 2010/01/01 |
| 홍보실 직원들은 왜 IT 공부를 안 할까? (2) | 2009/10/09 |
| 인터넷 심리학 - 노출증과 관음증 (1) | 2009/09/15 |
| 최초의 아이디어로 성공했지만 한순간에 사라진 CDNow (0) | 2009/08/31 |
추천 한방이 제게는 큰 힘과 자극이 됩니다. view on의 숫자를 인정사정 없이 꾹 눌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