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독보적인 넘버원으로 자리잡은 이후 뉴스를 고르고 제목을 손질해서 대문에 올리는 과정에서 언론사의 편집권을 침해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여론을 유도한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비난은 2008년 촛불집회 때 다음 아고라가 네티즌들의 의견결집의 장으로 기능한 데 반해, 네이버는 친정부적인 기사로 일관했다는 비난이 터져나오면서 네이버도 상당히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
*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기사 축소 파문은 뉴스캐스트 도입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고민 끝에 네이버가 뉴스의 편집권을 각 언론사에 돌려준다는 취지로 전격 도입한 ‘뉴스캐스트’가 벌써 1주년이 되었다. 그런데 처음 도입할 때부터 예상했듯이 언론사마다 클릭 유도 경쟁이 벌어지면서 뉴스캐스트는 한마디로 네티즌 낚시터가 되어버렸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되었을까?
이제는 아스라한 <선데이서울>의 추억
지금은 중년층의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1970년대에는 <선데이서울>이 시대를 풍미했다. <선데이서울>은 요즘 인터넷이 하는 대부분의 역할을 수행했다. <선데이서울>에는 꽤나 야한 여성 스타들의 수영복 사진부터 연예인 스캔들, 그리고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결코 다룰 수 없었던 희한한 사건사고 소식까지 정말 영양가 만점 (?)의 읽을거리가 가득했다.
* 2004년 연극 ‘선데이서울’ 주연배우 배두나가 선데이서울 잡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때 청소년들의 로망이었던 <선데이서울>은 결국 망했다. 이제는 굳이 돈내고 잡지를 사지 않더라도 훨씬 더 자극적인 볼거리들이 인터넷에 둥둥 떠다닌다. 쭉쭉빵빵 미녀들이 정직하게 벗고 나오는 ‘플레이보이’나 ‘팬트하우스’도 적자를 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70년대 <선데이서울>이 옐로우 저널로서 전성기를 구가할 당시 주류언론들은 사실관계가 확인된 대형 스캔들이라면 몰라도 막연한 루머는 절대 기사화하지 않았다. 이건 주류언론의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네이버 뉴스캐스트 도입 이후부터 확인되지도 않은 루머가 버젓이 네이버의 대문을 장식하게 되었다.
요즘은 루머가 비확인 비공식적 사실로 굳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루머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데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 우선 누군가 블로그나 게시판에 자신과 가까운 친구가 어떤 연예인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을 봤다더라는 ‘카더라 통신’을 올린다. 이 글이 인터넷을 떠다니면서 본질은 좀더 자극적으로 변하고, 디테일은 다듬어진다. 그러면 인터넷 언론이나 스포츠 연예신문에서 이 루머를 기사화한다. 이 기사는 결국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증거가 되고, 루머는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남는” 사건으로 굳어진다.
요즘은 “강남의 고급 식당에 갔더니 음식 맛과 서비스가 억망이더라”는 파워 블로거의 글 때문에 가게 문을 닫는 세상이다. 얼마 전에는 불친절한 서비스에 기분을 상한 이용객이 게시판에 올린 글 때문에 결국 종업원을 해고하고, 일정 기간 그 가맹점의 영업을 정지시킨 체인점의 사례도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마다 자사 제품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인터넷 알바를 채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경규, 김구라 등 라인업 출연진들. 화려한 출연진에도 불구하고 한 중학생의 장난으로 빚어진 오해 때문에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루머가 꼭 이해관계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몇년 전 SBS의 오락 프로그램 <라인업> 멤버들이 태안에 기름제거 봉사활동을 가서 다른 자원봉사자들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 소문이 퍼져서 결국 프로그램이 막을 내렸던 사건을 기억하시는지? 담당 PD가 해명 기자회견까지 했던 소동의 발단은 30대 주부가 인터넷에 올린 목격담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글은 어떤 중학생이 재미삼아 올렸던 100% 창작이었다.
루머의 진원지는 대부분 블로고스피어
요즘 언론은 인터넷 매체에다 인기 블로거들까지 가세해서 무한경쟁 체제다. 이런 와중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특종이 안되면 클릭횟수를 높일 수 있는 자극적인 기사거리가 필요하다. 기사거리가 없으면 하다못해 그럴싸한 제목으로 낚시질이라도 해야 한다.
최근에는 취재후기나 기사화하기 애매한 정보를 올리는 기자 블로그도 한몫 한다. 신문사는 자사 사이트 클릭수가 올라가고, 기자는 개인 브랜드를 널리 알릴 기회다. 기자들이 블로그에서 루머를 취급할 때는 절대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이니셜을 사용하지만, 노련한 네티즌 수사대는 기가 막힌 수사력으로 그 이니셜이 누구인지 금새 밝혀내고 만다.
2008년 1월 나훈아가 기자회견장에서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바지를 벗겠노라고 난리를 쳤던 사태의 발단은 나훈아의 사생활 루머를 올렸던 스포츠신문 기자 블로그였다.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현직 기자가 괜한 글을 올렸겠냐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이후 루머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은 야쿠자 개입설에 이어 나훈아 사망설까지 발전해버린 것이다.
* 기자회견장에서 바지 탈의 소동을 일으킨 나훈아는 세월을 뛰어넘는 섹시함으로 또다른 화제가 되었다.
자신들의 루머 보도로 일이 커지자 나훈아에게 직접 해명하라고 등떠밀던 언론사들
“세사람이 모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 (三人成虎)”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근거가 없는 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하게 되면 사실처럼 믿게 된다는 뜻이다. 일단 한번 루머에 불이 붙자 나중에는 주류언론까지 가세해서 나훈아가 나와서 직접 해명하라고 다그쳤고, 사태가 이쯤되자 대중들은 루머를 사실로 믿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나훈아가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바지를 벗고 거짓을 증명하겠다고 호통 한번 치자 사태는 싱겁게 마무리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어처구니 없는 소동 끝에 어느 언론사도 사과하는 곳이 없었다.
결론은 태산명동 서일필 (太山鳴動 鼠一匹).
떠들썩했지만 정작 나타난 결과가 초라함을 이르는 말이다. 당시 나훈아가 기자회견을 한다고 했을 때 뭔가 잔뜩 말초적인 고백을 기대했던 나 자신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손발이 오글오글할만큼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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