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졸업의 달. 졸업은 한 단계를 끝내고 새로운 도약을 기약하는 단계이다. 한 단계를 무사히 마치고 졸업한다는 것은 너무 기쁜 일이지만 4, 50대들은 졸업식장에서 하나같이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요새는 졸업식장에서 눈물을 보이는 학생은 없다. 세월 따라 졸업식장 풍경도 많이 바뀌었지만, 음악도 달라졌다.
풍경1 - 1979년도 중학교 졸업식
오늘은 막내가 중학교 졸업하는 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처럼 온 가족이 때 빼고 광낸 다음 학교 강당에 모였다. 노란색으로 곱게 물든 꽃다발도 교문 앞에서 거금 2,000원이나 주고 샀다. 공식적인 행사는 언제나 지루한 법. 육성회장님의 축사에 이어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이어진다. 오늘만 지나면 교장선생님의 끝날 듯 끝날 듯하면서도 계속되는 훈화도 이제 끝이다.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 아이들이 연신 꼼지락거리고 여기저기 소곤대는 목소리가 제법 커지기 시작한다. 움직이지 말고 조용히 하라고 담임선생님이 연신 눈을 부라리지만 이제 곧 졸업장을 받아들 아이들에게 그리 큰 효과는 없다. 드디어 2학년 대표가 올라와서 선배들을 보내는 마음을 낭독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2학년 대표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고 강당은 숙연한 분위기로 변해간다.
졸업의 눈물 (Graduation Tears)
* 70년대 중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노래. 1976년 한국과 홍콩의 합작영화 <사랑의 스잔나 (Chelsia My Love)>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진추하가 불러서 아시아 각국에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다.
결국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2학년 대표의 낭독이 끝나고 이제 졸업생 대표가 단상에 올라간다. 졸업생 대표는 처음부터 목소리가 젖어 있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새나오고 졸업생 대표의 낭독이 끝날 무렵에는 방금 전까지 시시덕거리던 아이들의 눈망울에 하나같이 눈물이 맺혀 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선배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음악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춰 부르는 졸업식 노래의 3절이 끝날 즈음에는 울지 않는 아이가 없을 정도이며, 많은 학부모들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이제 드디어 중국집 가서 탕수육에 짜장면 한 그릇 먹으면 진짜 중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졸업식에서 절대 빼먹을 수 없는 행사는 기념사진 촬영. 일년에 며칠 없는 대목에 웃음꽃이 활짝 핀 카메라 아저씨가 정성스레 찍어준 사진은 현관 어귀에 걸려서 색이 누렇게 바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게 된다.
올드랭사인 (Auld Lang Syne)
* 1980년대까지 졸업식을 대표하는 음악이라면 단연코 올드랭사인 (Auld Lang Syne)이었다. 1788년 작곡된 스코틀랜드의 시인 로버트 번스 (Robert Burns)의 이 유명한 가곡은 우리나라에서 ‘석별’이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하다. 사실 이 노래는 세계적으로 이별의 노래로 유명하지만, 원곡의 가사는 이별 후 재회의 기쁨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시대에 이 노래의 곡조를 따서 애국가를 불렀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풍경2 - 2009년도 중학교 졸업식
졸업을 앞둔 막내는 혹시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졸업식에 오겠다고 하실까 봐 걱정이 태산이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일가족이 다 오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요즘 졸업식의 트렌드는 최대한 빠르고 간단하게 끝내는 것이다. 훈화를 길게 늘어놓다가는 야유를 받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내빈이나 교장선생님 모두 잘 알고 있다. 사실 훈화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없다. 가족은 가족대로 디카며 캠코더 촬영하느라 바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삼삼오오 핸드폰으로 기념사진 찍는다고 정신이 없다.
일사천리로 행사가 끝나고 졸업식 노래의 순간. 음악선생님이 그렇게 가사를 외워오라고 했건만 제대로 노래를 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닭살스러운 가사에 어색한 웃음소리가 섞이면서 졸업식은 끝이 난다. 졸업장을 받아 들고 담임선생님과 기념촬영을 마친 다음 교문을 나선다.
* 매년 졸업 시즌이 오면 졸업식장에서 밀가루를 뿌리고 교복을 찢는 등 난장판을 치는 행태를
개탄하는 보도와 기사가 단골로 등장한다. 그런데 저런 짓은 3, 40년 전의 중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도 다 했다.
담임선생님이 밀가루를 뿌리는 등의 불량한 행동은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지만, 말썽꾼들에게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몇몇 노는 아이들은 밀가루에 계란, 케첩, 식초까지 골고루 뿌리고 교복을 발기발기 찢은 다음 신문지 한 장으로 벗은 몸을 가리고 운동장을 뛰어다닌다. 모두 생수병을 하나씩 들고 다니는데 아마 소주인 듯 하나같이 얼굴이 시뻘겋다.
저런 애들과 절대 어울리지 말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아빠는 오지 않았다.
이별의 노래 (Chopin - Etude in E major, op. 10 no. 3)
* 이별은 이별이되 그리 슬프지 않은 이별의 음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흔히 ‘이별의 노래’라고 부르는 “연습곡 작품 10-3 마장조”가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곡은 피아니스트가 고도의 기술을 구사하면서 연습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작곡된 곡이다. 그런데 이 곡이 왜 우리나라에서만 이별의 노래가 되었을까? 이 곡이 1935년 제작된 쇼팽의 전기영화 ‘이별의 노래’에서 테마 음악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쇼팽은 이 곡에 대해서 전혀 설명을 붙이지 않았지만, 애수 어린 멜로디 때문에 이 곡은 자연스럽게 ‘이별의 노래’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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