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홍보팀과 전산팀은 딱히 말 섞을 일도 없는 사이였다
웹이 등장하기 전까지 회사마다 홍보팀과 전산팀 (요즘은 ‘전산팀’이지만 몇년 전만 해도 대부분 ‘전산지원팀’이었다)은 별로 부딪칠 일이 없는 사이였다. 1년에 한두번 홍보팀에서 전산팀에 업무협조를 구해야 하는 일이라고는 사보 발송 DB 수정 정도였다. 유부남들은 몇달씩 밀린 외상값 처리를 위해 가짜 월급봉투를 만들러 전산팀을 은밀하게 들르기도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사적인 일이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회사나 기관의 경우, 홍보팀과 전산팀이 관리부문에 함께 소속되어 있는 경우도 많았다. 팀장들은 매주 팀장 미팅에서 얼굴을 맞대고 팀장 회식 때 소주잔도 기울이지만, 직원들은 복도에서 마주칠 때 인사나 할까 회사 체육대회나 야유회가 아니면 함께 말을 섞을 일도 거의 없었다. 소속만 같을 뿐이지 업무적으로 어떤 접점이나 동질감은 전혀 찾을 수 없는 사이였던 것이다.
* 어느 회사를 가도 전산팀의 특징은 사무실이 철저하게 장비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홍보팀과 전산팀 갈등사례 케이스 1 시초
2009년 11월말. 홍보팀에서 새해를 맞아 3년 전 구축한 회사 홈페이지를 일부 리뉴얼하기로 결정했다. 만들 때만 해도 그럴듯했는데 요즘 보면 스타일이 너무 구식이라 담당자 깐깐녀 주임 입장에서는 다 갈아엎고 아예 새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하지만 요즘같은 불경기에 예산도 없는 형편이라 유지보수 업체에 변경사항 수정 및 디자인 일부 변경을 요구하면서 사실상 왕창 뜯어고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홈페이지 유지보수 업체를 불러서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얘기했더니 자기들은 못 한단다. 말만 수정 변경이지 디자인뿐만 아니라 시스템까지 모조리 손을 봐야 하는데 자기들은 여력이 없단다. 한번씩 깐깐녀 주임이 전화에 대고 왕창 히스테리를 부려도 항상 웃는 목소리도 다 받아주던 홈페이지 유지보수 업체 팀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번 리뉴얼하면서 재계약은 최대한 수월하게 넘어가도록 해주겠다고 했더니, 사실은 불경기에 일이 너무 많이 떨어져 나가서 직원을 줄이는 바람에 당장 현금 안 들어오는 일을 할 여력이 없단다. 사정을 듣고 보니 꼬시고 다그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연신 미안하다는 유지보수 업체 팀장을 보내고 나서 홍보팀장에게 미팅 결과를 보고한다. 잠시 전화 통화를 하던 노련한 홍보팀장이 자기가 전산팀장에게 사정 얘기하고 괜찮은 업체 몇군데 추천해달라고 부탁했으니 전산팀 꼼꼼남 대리와 얘기해보란다.
* 우리 머리 속에 전형적인 전산실의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는 6, 70년대 미국의 전산실.
같은 사업부 소속이건만 전산팀의 분위기는 홍보팀과 많이 다르다. 항상 외부고객이 들락거리고 시도때도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때문에 시끌벅적한 홍보팀에 비해 전산팀은 너무 조용해서 들어갈 때마다 은근히 눈치 보이고 불편하다. 꼼꼼남 대리라면 그냥 얼굴만 알고 마주칠 때마다 가볍게 목례를 나누는 정도의 사이다. 꼼꼼남 대리가 전산팀과 거래하는 시스템 유지보수 업체에 얘기해서 홈페이지 업체 몇군데를 추천받았다고 메모지를 넘겨준다.
깐깐녀 주임은 사무실로 돌아와서 우선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 다음 괜찮다고 판단되는 2군데에 연락을 해서 내일 미팅 약속을 한다. 두 업체와 미팅 결과 한군데서 사흘 뒤에 시안을 가지고 다시 들어오기로 약속했다. 사흘 뒤 업체 사장이 시안 3개를 가지고 들어 왔고, 깐깐녀 주임은 100%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조금만 수정하면 쓸만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팀장에게 보고 후 작업을 진행한다. 현재 유지보수 업체와는 내년 1월로 계약이 종료되니 우선 작업을 진행하다가 계약은 그때 하기로 했다.
시안이 두세번 왔다갔다 한 다음 디자인이 결정되었고, 재계약은 물 건너갔다는 사정을 전해 들은 현재 유지보수업체에서 디자인이며 프로그램 소스까지 일찌감치 다 넘겨줘서 인수인계 작업도 잘 이루어졌다. 그런데 홈페이지 디자인 작업이 끝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홍보팀과 전산팀 갈등사례 케이스 1 발단
작업한 것들을 회사 서버에 포팅 (Forward Setting) 하는데 매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게다가 작은 수정이라도 하나 요구하면 안된다는 것이 너무 많다. 이유를 물어보면 하나같이 전에 하던 업체에서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놔서 안된다는 것이다. 깐깐녀 주임도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한번 두번 같은 소리를 계속 듣다 보니 좀 이상하다. 생각해보니 지난번 업체는 처음부터 한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전산팀의 꼼꼼남 대리에게 물어봤더니 자기는 잘 모르겠다는 무성의한 대답만 돌아왔다. 성질이 뻗쳤지만 꾹 참고 유지보수 업체 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몇년 동안 고생만 죽어라고 시켜놓고 정작 어려운 시기에 재계약을 못해줘서 염치가 없지만 지금 이것 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 꼼꼼녀 주임의 푸념과 하소연을 다 듣고 나서 유지보수 업체 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은 저도 그 동안 계속 그 업체에서 전화를 받았는데요, 그 업체는 디자인이나 플래시만 전문으로 하는 업체같은데요.”
“무슨 말씀이세요?”
“남의 회사 얘기 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서버나 DB를 아는 사람이 없나봐요. 소스까지 모조리 다 넘겨줬는데도 매번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전화가 오는데 우리도 참 난처합니다.”
깐깐녀 주임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창피스러워서 전화를 끊고는 바로 전산팀의 꼼꼼남 대리에게 전화로 따졌다.
“이런 부분은 애초에 전산팀에서 모니터링하고 체크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니, 전산팀에서 어떻게 홍보팀의 업무를 일일이 다 챙깁니까? 저는 우리 팀장님이 홈페이지 업체 몇군데 알아봐주라고 해서 우리회사 시스템 유지보수 업체에 부탁해서 받은 명단을 넘겨드린 것뿐이라고요.”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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