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요즘 기업의 채용풍속도
한번 굳어진 관행이나 인식을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렵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이 직접 보거나 겪은 것 외에는 잘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드로가 동이 트기 전에 예수를 3번씩이나 부인했고, 허경환도 일요일마다 개그콘서트 나와서 "이 자슥이 이거 한대 맞고 쌍코피 철철 흘려봐야, 아~~ 내 혈액형이 B형이였구나 하면서 진짜 아빠 찾아 갈끼야" 하고 포효한다.
10년 전만 해도 미국 가서 MBA만 마치고 오면 대단히 유리한 입장에서 취업이 가능했고, 상당한 인센티브도 챙길 수 있었다. 그래서 괜찮은 직장 잘 다니다가도 사표내고 미국 가서 MBA 과정을 밟고 돌아와서 재취업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2010년의 취업시장은 10년 전보다 훨씬 상황이 나쁘고 힘들어졌다. 겪을만큼 겪어본 기업들도 당장 업무에 별 도움이 안되는 학위나 자격증에는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스펙으로 취직이 되는 시대가 아니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지금 당장 취업이 급한 사람들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예전보다 소위 스펙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호황기의 기업은 패기넘치는 스타일의 신입사원을 선호한다
내가 처음 직장에 들어가던 80년대 말은 대한민국 유사 이래 최대 호황이었다. 사업규모가 커지면서 기업마다 우수한 신입사원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했고, 4학년 2학기 취업 시즌이 되면 대기업에 다니는 선배들이 출장비 받아서 학교로 찾아와 술 사주면서 자기 회사 지원하라고 설득하던 시절이었다.
당시는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갈망과 젊은이들의 행동을 통해 직선제를 쟁취해냈고, 일본에서 건너온 '신세대'라는 신조어가 막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이 젊은 현대건설 사장으로 직장인들의 우상이던 시절, 당시 기업들이 원하던 인재상은 도전적이고 성취동기가 강한 사람,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앞뒤 돌아보지 않는 불도저같은 스타일이었다.
* 1980년 전두환 대통령 내외를 수행해서 공사현장을 시찰하는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
사람이 부족해서 삼성이나 엘지같은 대기업들도 차장같은 중간직책을 건너뛰고 진급을 시키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기업만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터무니없는 배짱이나 기지로 취직하는 것도 가능했다. 가급적 다양한 스타일의 인재를 여유있게 확보하려던 기업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내 선배 가운데는 등록금 마련을 위해서 임시직으로 다니던 회사의 임원에게 회사규정을 들먹이면서 딱딱거리다가 그 임원의 눈에 들어 졸업 후 정식으로 취직한 경우도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남을 배려하지 않는 냉혹한 스타일이 유리하다
내 첫 직장이던 광고회사 공채 때 미디어 플래닝 부서에 합격했던 입사동기의 사례다. 당시 미디어 플래닝 부서의 신입사원 TO는 단 1명이었다. 1차 서류전형과 2차 실기시험을 거쳐서 미디어 플래닝 부서 지원자 가운데 총 6명이 최종 면접에 올라왔다. 업무이해도 측정부터 간단한 영어회화 테스트 등 다양한 면접과정 가운데 3명씩 3분토론을 하는 과정이 있었다. 내 동기는 자신이 제일 먼저 말을 꺼내서 혼자서 3분을 다 써버렸다. 나머지 2명은 입도 한번 뻥끗 못하고 3분 토론이 끝나버린 것이다.
* 하나같이 웃고 있지만 면접관들이 보는 앞에서 집단토론을 하고 있는 입사지원자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하면 경쟁자 2명은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을 했단다. 신입사원 OJT 받을 때 그 친구가 직접 해준 얘기다. 그리고 미디어 플래닝 부서장이 교육 들어와서 그 사실을 확인해줬다. 웬만한 광고마다 100% 다 팔리던 시절이었다. 미디어 플래닝 부서의 임무는 광고영업 (AE)를 잘 꼬드기고 구슬려서 안 좋은 시간대와 지면까지 광고주에게 팔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임무를 잘 수행하려면 같은 회사 AE도 속일 수 있는, 염치도 없고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야 한다. 동기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결국 최종면접에서 선택될 수 있었다.
요즘 대세는 협동심과 동료에 대한 배려가 강한 스타일
대한민국 기업들이 요구하는 인재상이 확 바뀌게 된 계기는 IMF였다. IMF를 겪으면서 기업마다 정리해고를 하고 사업규모를 축소했다. 다행히 IMF는 금새 극복했지만 이제 대한민국에 8, 90년대같은 호황기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산업구조가 한층 성숙해졌고, 기업들은 공격적인 투자나 영업을 자제하고 안전성을 추구한다.
* 요즘 기업이 선호하는 인재상은 협동심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강하고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이다.
한때 10억에 육박하던 일선 은행 지점장의 대출전결 권한이 요즘은 1억 미만으로 줄었다. 사람을 뽑을 때도 전에는 동키호테같이 엉뚱한 면이 있더라도 패기와 추진력이 강한 스타일에 점수를 주었다면, 요즘은 동료들과 조화를 잘 이룰 수 있는 협동심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강한 사람 우선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요즘은 면접장에서도 잘 웃고 잘 웃기는 분위기 메이커 타입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 예전같았으면 그런 타입은 진지함이 부족하다고 절대 뽑히지 않았을 것이다.
똑같은 성격과 스타일이라도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하는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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