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10년 전의 오늘, 전 세계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면서 기대와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Y2K 때문에 큰 소동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저녁이 되자 새천년이 시작됐다는 흥분도 가라앉았고, TV 뉴스에서는 미국의 외진 시골 상점 몇군데에서 오래된 계산기가 오작동을 일으킨 사례가 보고되었다는 외신을 전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모든 국가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사회간접자본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엄청난 소송과 재판 때문에 사회 전체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시나리오는 문자 그대로 시나리오로 끝났다.
* 2000년이 시작되었지만 그 동안 매스컴에서 경고했던 무시무시한 컴퓨터 오류와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태산명동서일필 (泰山鳴動鼠一匹)
태산이 떠나갈 듯 난리를 피우고 나온 것은 쥐 한마리 뿐이었다는 중국의 고사성어가 이렇게 딱 들어맞는 경우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Y2K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이 1996년 말이었다. 당시 나는 LG-EDS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했는데, 부문장이 EDS에서 파견나온 미국사람이었다. 1997년도 부문 사업계획 수립을 위한 미팅에서 그가 Y2K를 언급했다. 내 영어가 짧은 탓도 있었지만,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프로그램 코드 몇줄 바꿔주는 걸 국내 최대 IT회사의 신사업으로 추진하자고? 나뿐만 아니라 마케팅 부서와 영업 부서의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다. 1998년 초, 내가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Y2K를 신사업으로 적극 추진하는 사업부는 없었다.
* 당시 Y2K는 어느 누구도 겪어본 적이 없고, 실체도 알 수 없는 미지의 공포 그 자체였다.
1999년에 개봉해서 꽤 짭짤한 흥행수익을 거뒀던 <엔트랩먼트 (Entrapment)>란 영화를 기억하시는지? 세계에서 가장 섹시하게 늙어가는 배우 숀 코네리와 그냥 섹시한 캐서린 제타 존스가 밀레니엄 버그를 이용해서 거액의 은행계좌 이체 범죄를 저지른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Y2K’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남성 3인조 그룹도 있었다.
* 이해하기 쉽지 않은 금융사고에 대한 영화여서 그랬던지, 보고 나서 기억에 남는 것은
캐서린 제타 존스의 기가 막힌 몸매뿐이었다.
1999년말, 정통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Y2K 비상대책반이 만들어졌고, 12월 31일 청와대에 상황실을 차렸다. 드디어 2000년이 밝았고, 하루 이틀이 지나도록 걱정했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국가 차원에서 대비를 착실하게 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보니 세계 어디에서도 Y2K 대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권위있는 기관과 전문가들이 나서서 사회적 불안감과 공포심을 조성하면 훌륭한 사업기회가 된다는 교훈만 남겨주고 Y2K 대소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이후 10년 동안 세계경제는 계속 하향곡선이었다.
다시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면서 이제는 Y2K같은 애물단지도 없으니 제발 경기가 상승곡선을 타기를 간절하게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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