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보신각 타종 장면을 본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던 것 같은데 내일이면 벌써 12월이다. 직장인들은 결산에다 내년 사업계획, 거기에다 각종 모임까지 더해지면 연말이 다가올수록 시간은 점점 빨라지고 마음은 다급해진다. 도대체 왜 연말이 다가올수록 시간이 더 빨라지는 것일까?
* 종로 보신각 주변에 몰리는 인파는 매년 12월 31일 자정, 일년에 딱 한번만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자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
외사촌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나 뵌 이모님. 아들이 내년에 중학생인데 이모님께서 애는 언제 학교에 들어가냐고 물으신다. 자주 인사 못 드린 내 잘못이 크지만, 그래도 너무 무심하신 것 아닌가? 하기야 나도 할말이 없는 것이 중학생인줄 알았던 외조카 녀석이 이번 수능 망치고 일찌감치 재수 준비하고 있단다.
19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폴 자네 (Paul Janet)는 “열 살 소년은 일년을 인생의 1/10로 느끼고, 50 살의 남자는 1/50로 느낀다”고 했다. 사람은 살아온 인생에 비례해서 시간이 빨라지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오랜 동안 시간의 흐름에 대해 가장 합리적인 설명으로 인정받던 이 이론은 최근 들어 틀린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경험이 쌓일수록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이면 누구나 겪는 일화. 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드디어 자대배치를 받았다. 군기가 바짝 들어서 빳빳하게 부동자세로 내무반 침상에 앉아 있는데, 제대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말년병장이 옆에 앉아서 담배 뻐끔거리면서 자기도 신병으로 올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 훌쩍 가버렸다고, 세월 금방이라고 이죽거린다. 당시에는 앞으로 3년을 어떻게 버티나 눈앞이 깜깜했는데, 정말이지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나도 어느덧 말년병장이 되어 모포 뒤집어 쓴 채 옆에 신병 앉혀놓고 세월 빠르다는 소리를 주절거렸다.
*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다음 더블백을 메고 자대로 이동하는 신병들. 군대 갔다온 남자라면 영원히 잊지 못할 저 순간도 지나고 나면 순식간이다.
“주전자도 지켜보고 있으면 끓지 않는다 (A watched pot never boils)”라는 서양 격언이 있다. 물리적으로 시간의 흐름은 절대적인 일관성을 가지지만, 기대할 때는 느리게 느껴지고, 행복한 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다.
새로운 부서로 옮긴 다음 바뀐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어서 체중이 빠진 경험은 대부분 겪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두 달 시간이 지나면서 바뀐 환경에 익숙해지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체중도 회복된다. 예측 불가능하고 상시적인 스트레스는 심신의 병을 유발하지만, 적절한 변화와 가벼운 스트레스는 동기부여와 심기일전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피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시간은 더 빠르게 흐른다?
대부분의 직장에서 25일은 월급날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시간이건만 희한하게도 월급을 줘야 하는 고용주 입장에서는 달마다 25일이 너무 빨리 돌아와서 원망스럽다. 그러나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2, 3일 이내에 자동이체로 다 빠져버리는 월급쟁이 입장에서 25일은 정말 늦게 오고 또 금새 지나간다. 똑같은 25일이건만 입장의 차이에 따라 피부로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큰 차이가 난다.
명절만 되면 넌 언제쯤이나 시집을 갈 거냐는 집안 어른들의 성화가 지긋지긋한 노처녀에게는 일년에 한번씩 돌아 오는 추석과 설날이 분기마다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사 한번 치르고 나면 돈 깨지고 몸 상하고 스트레스까지 듬뿍 받게 되는 종갓집 맏며느리에게는 일년에 몇번없는 제사가 고개만 돌리면 들이닥친다.
* 유통업체에서 마련한 주부 명절스트레스 격파 이벤트에 참가한 주부들이 기와장을 깨고 있다. 명절을 쇠는 집안의 며느리라면 설이나 추석 연휴가 무척이나 자주 돌아오고 또 길게 느껴질 것이다.
바쁠 때 시간은 더 빠르게 느껴진다?
지독한 모범생 몇몇을 제외하고 학창시절 벼락치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번 시험만은 미리 준비해서 성적을 올리리라 다짐했건만 시험날짜가 다가올수록 피치 못할 사정은 많아지고, 시험공부 계획은 매일 수정된다. 결국 시험 전날, 한 시간에 10페이지씩 마스터해야 하는 막판 초읽기에 몰렸을 때 초인적인 자신의 학습능력에 놀라면서 동시에 시간이 왜 이렇게도 빨리 가는지 울화통을 터뜨려본 기억이 한 두 번씩은 다 있을 것이다.
몰입할수록 시간은 더 빠르게 느껴진다?
* 군대 3년을 잘 견디고 제대한 사람들이 예비군 훈련 하루 받으면서 지겨워서 진저리를 치는 이유는 예비군훈련은 자발성이 전혀 없는 강제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몇 가지 타당한 이유들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Why Life Speeds Up As You Get Older)>에 나오는 설명을 간략하게 제시해보자. 우생학자 프랜시스 골턴 (Francis Galton)에 따르면 사람의 기억 속에는 최근의 경험과 관련된 것보다도 어린 시절에 관련된 것들이 더 많다고 한다. 또한 통계학자 그레이 (Gray)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직접 겪은 일들을 더 최근의 일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의 몸 속에는 생리적 시계가 작동하는데, 노인이 되면 생리적 시계가 느려지기 때문에 세상의 속도가 빨라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시간의 길이와 속도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만들어진다. 심리적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은 자신의 기억을 반주 삼아 우리 내부의 시계에 맞춰 똑딱거리며 사라져가는 것이다.
아까운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이려면?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변화를 거부하고 보수적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관습적으로 살게 되고, 이는 시간의 흐름을 더욱 빠르게끔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수록 빠르게 사라져가는 시간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할까? 아까운 시간을 늘일 방법은 없을까?
* 숭어낚시를 즐기는 낚시꾼들. 나이가 들수록 취미생활은 중요해진다.
방법은 한가지, 계속 새로운 시도와 체험으로 시간을 계속 채워 넣어야 한다. 예를 들면 평생 가보지 않았던 클래식 음악회에 가본다던지, 만화 그리기 같이 전혀 새로운 취미를 갖는다던지 이런 시도를 죽을 때까지 계속하는 것만이 시간을 늘일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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