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춥고 길었던 겨울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삼라만상에게 3월은 새 출발을 의미한다. 물론 봄이 되어도 곳간에 쟁여둔 양식은 바닥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보릿고개라는 시련이 기다리고 있지만, 어쨌든 훈훈한 봄 바람은 무언가 희망을 안겨준다. 날씨가 확 풀려버린 3월을 맞아 들을만한 봄 음악 몇 편을 소개한다.
좋았던 시절을 왜 우리는 봄날이라고 할까
좋았던 시절을 가리켜 우리는 흔히 ‘인생의 봄날’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계절 가운데 화려하기로 치자면 ‘여름’이 최고다. 거기에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수확의 계절 ‘가을’은 또 어떻고. 그런데도 누구 하나 예외 없이 굳이 추억하고 싶은 시절을 ‘봄’으로 표현할까? 아마도 춥고 혹독한 시련의 계절 ‘겨울’ 내내 잘 버티고 살아남았다는 안도감, 그리고 앞으로는 좋은 일들만 생길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봄’이란 단어에는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잔뜩 내포되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봄이라고 해도 겨울 여왕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3월의 날씨는 제법 춥다. 뼈 속을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 봄 기운이 감지될 뿐, 해가 떨어지면 섣불리 돌아온 제비가 얼어 죽기 딱 알맞은 날씨다. 그래도 봄이 오면 아낙들은 얇고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꺼내 입고 길거리를 나서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남자들도 갑옷 같은 외투며 바바리를 벗어 던진다. 바야흐로 봄날이 오면 묵은 것들을 훌훌 벗어 던지고 싶은 욕망이 누구나 가슴 깊숙한 곳에서 꿈틀거리는 것이다. 3월마다 감기 환자가 괜히 많아지는 게 아니다.
April in Paris
피아노와 비브라폰 연주자로 명성을 날렸지만, 뭐니뭐니해도 자신이 이끌던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의 마스터로 더 유명한 카운트 베이시. 흐릿한 흑백 영상이지만 그의 감미로운 스윙 재즈를 듣고 있노라면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햇살 따스한 봄날을 느낄 수 있다. 1955년에 발매된 ‘April in Paris’는 스윙의 황제로 칭송되는 카운트 베이시의 매력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스윙재즈의 명반이다.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꿈틀거리는 희망의 박동을 느껴보라
봄을 맞이하면서 앞날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인생이다. 하루하루 피를 말리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형수들도 봄을 맞아 교도소 구석에서 피어나는 새싹을 보면 삶의 희망이 피어 오른다고 하지 않는가? 두 눈을 감고 가만히 기억을 떠올려 보자. 살아오면서 가장 설레던 나의 봄날은 언제였던가? 가슴 터질 듯한 꿈과 기대로 부풀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가?
Beethoven Violin Sonata 5
흔히 비발디의 사계에 나오는 봄과 더불어 봄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클래식 음악이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10곡 가운데 9번 크로이첼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곡. 베토벤이 1800~1801년 사이에 작곡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곡은 풍부한 선율과 충만한 서정성으로 가득하며, 감상자에게 평화롭고 자유분방한 느낌을 준다.
밝고 유창한 선율로 시작되는 1악장 알레그로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즉흥적인 변주가 낭만적이며 봄에 들떠 있는 감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악곡의 부제인 '봄'은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이 아니라 누가 들어도 봄 내음이 느껴진다고 해서 후세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기대에 부풀었던 순간을 떠올려보라
기억을 더듬어 보면 대부분 인생에서 한 단계를 무사히 매듭짓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기대와 희망이 가장 크다. 그러니까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음 단계로 진학할 때,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때, 군대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전역할 때, 집에서 독립할 때,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릴 때, 아이를 낳아서 가족이 늘어날 때……
아직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크고 이미 겪었던 많은 사람들이 별거 아니라고 시큰둥하게 김을 빼지만 그래도 난 다를 거라고, 내게는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거라고 환상을 품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법이다.
누군가가 그러지 않았던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경험은 여행이었다고.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영원히 가슴 속에 남는 행복한 기억은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계획을 짤 때였다고. 그러니까 뭐든 직접 경험할 때보다 그 순간을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더 짜릿하고 행복한 법이다.
Spring Can Really Hang You Up the Most
사라 본이 이 노래를 부른 이후 얼마나 많은 여가수들이 이 곡을 리메이크했던가? 검색엔진을 통해서 이 곡을 한번 찾아보시길. 제인 모나힛, 카산드라 윌슨, 게이코 리 등 난다 긴다 하는 쟁쟁한 재즈 가수들의 넘버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정작 오리지널이라 할 수 있는 사라 본 버전은 찾기 힘들다는 사실.
이 곡을 감상할 때 주의할 점 한가지는 절대 일과시간 중에는 듣지 말 것. 부드럽고 나른한 곡의 전개는 듣는 사람을 한없이 무장해제시킨다. 점심 식사 후 양지 바른 창가에 앉아 나른한 춘곤증에 몸을 맡기는 기분이랄까? 기분 좋은 골골 소리를 내는 고양이의 목덜미를 쓰다듬는 여유로운 기분을 만끽하고 싶은 분만 들어보시라. 참고로 이 곡은 Frances Landesman and Thomas Wolfe 버전이다. 없는게 없다는 유튜브에도 사라 본 버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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