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입국에서 디지털 컨버전스의 시대로 세상이 바뀌다
땅덩어리가 좁고 인구도 적은데다 부존자원마저 거의 없는 우리나라가 살 길은 기술뿐이라면서 기술입국 (技術立國)을 부르짖던 시절이 있었다.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도 한가지씩 기술을 제대로 배워야 평생 먹고 산다고 했다. 실제 90년대까지는 대기업 공장에 들어가서 한 10년 고생하면서 기술을 익히면 자리가 잡히고, 그 다음부터는 정년퇴임까지 큰 문제없이 대우받으면서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에는 모든 업무영역을 정확하게 정의한 다음, 분 초 단위까지 세분화해서 관리하는 것이 선진경영기법이라고 했다. 물론 업무의 세분화에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정확하게 정의된 좁은 영역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의 필요성이 대두되기도 했고, 영역 사이에 낀 애매한 업무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이런 소소한 문제점들은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대가 끝나고, 개별 기술보다 다양한 기술의 조합에 더 큰 방점이 찍히는 요즘에는 디지털 컨버전스 (Digital Convergence)의 바람이 무섭다. 요즘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PC, 내비게이션, 게임기, 디지털 카메라, MP3 플레이어에 체크카드까지 여러 가지 기능을 스마트폰 한대로 해결한다. PC업계에서는 덩치를 줄인 넷북이나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로 대응하고 있지만, 무게중심은 이미 애플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진영으로 쏠린 상태다.
앞으로는 인터넷과 방송의 융합이 관심거리다. 구글이 소니와 손잡고 구글 TV를 발표했으며, 향후 몇 년 동안 인터넷 TV의 향방이 방송사와 언론사를 포함해서 컨텐츠 산업까지 좌우할 것이다. 학문의 영역에서도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는 '통섭 (Consilience)'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폐쇄적이기로 유명한 대학에서 전공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현상은 기존의 학문 영역에서 해결 곤란한 일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인재 스타일도 한우물 형에서 멀티태스킹 형으로
이런 시대적 변화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의 스펙도 변화시켰다. 요즘 세상에 필요한 인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대표되는 팔방미인형 르네상스맨이다. 우리 옛말에 “열두 가지 재주 가진 놈이 저녁거리 간데 없다”고 했으며, 그래서 “사람은 모름지기 한 우물을 파야 한다”고 했다. 하나같이 다양한 관심과 재주를 경계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엉뚱한 분야라도 한번 꽂히면 오타쿠적인 집중력을 발휘하는 오지랖 넓은 팔방미인형 인재를 필요로 한다. 이런 인재형은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학습능력으로 무장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기존 상식을 깨뜨리면서 혼자 북치고 장구 치는 스타일이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중고생들은 대부분 심야 음악방송을 들으면서 공부를 했는데, 부모님들은 라디오 듣느라 신경 쓰면서 무슨 공부가 되냐고 못마땅해 하셨다. 생각해보면 동시에 여러가지 일을 하는 멀티 태스킹에 대한 거부반응이었는데, 음악 들으면서 공부하면 더 잘된다고 꿋꿋하게 이어폰을 귀에 꼽고 버티던 학생들이 이제는 중년이 되어서 사회의 멀티 태스킹 요구 앞에서 당혹해 하고 있다.
홍보인에게는 공식적인 업무 이외의 활동도 은근하게 요구된다
최근 통화한 한 공기업 홍보팀 과장의 하소연 한 토막. 자신은 회사에서 홈페이지와 인쇄사보를 담당하고 있는데, 윗분들이 이따금 블로그나 트위터 얘기를 꺼낼 때마다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회사 블로그나 트위터를 공식적으로 운영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홍보과장쯤 되면 개인적으로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뉘앙스를 은연중에 풍긴단다. 요즘은 업무적으로 만나는 기자나 필자들과 명함을 주고 받으면서도 상대방의 명함에 블로그나 트위터 주소가 있는지부터 살펴본다고.
이게 상당한 스트레스라서 이 참에 자기도 블로그를 하나 만들까 고민 중인데, 자기는 수시로 들여다 보면서 글을 올리고, 답글을 다는 데는 도대체 자신이 없단다. 거기에다 자신은 신입시절부터 만년필로 원고를 써 버릇해서 워드로 작성한 원고 교정하는 것도 불편한데 블로그까지 할 생각을 하면 신경질이 뻗친다고. 별달리 해줄 말이 없었지만, 디지털 컨버전스와 멀티 태스킹의 시대를 맞아 이래저래 고달픈 홍보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 이 글은 <Communication Network> 2010.08. vol. 198에 게재한 원고입니다.
'기고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디지털 컨버전스와 멀티 태스킹의 시대, 홍보인은 고달프다 (0) | 2010/09/03 |
|---|---|
| 선거 공약과 사표 방지심리의 역상관 관계에 대해서 (0) | 2010/09/01 |
| 뇌의 거짓말, 이 책을 집어든 당신의 행동을 설명해주는 책 (0) | 2010/08/09 |
| 트위터 광풍, 이 또한 지나가리라 (4) | 2010/07/28 |
| 앞으로는 트위터가 확실한 정치 홍보 미디어로 자리매김할 듯 (0) | 2010/07/21 |
| 그대, IT로 통하고 있는가? (0) | 2010/07/19 |
추천 한방이 제게는 큰 힘과 자극이 됩니다. view on의 숫자를 인정사정 없이 꾹 눌러주세요.





